[퍼온글]

“스스로 인생막장을 택한 중범죄자들도
싸이에서는 화려한 벤처사업가로 변신하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성공만은 꿈꾸는 한심한 백수들도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척
전문직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며
자신만은 정말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곳이 싸이월드다.

싸이월드 일기장 같은 경우는 가식의 메카이다.
그만큼 은밀하면서도 타인을 의식하는 역겨운 글쓰기장이다.
읽을 대상을 염두해두고 쓰는 그 자기자랑 가득한
논픽션 드라마 일기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친하지도 않은 사람 사진까지 마구 스크랩하며
친구 폴더의 페이지수를 늘려 내 대인관계는 이 정도다 뽐내고,
렌트카에서 사진을 찍거나 고급레스토랑에서
사진을 찍는 것 따위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려고 시도한다.
마치 영원한 사랑을 할 듯 홈피 전체를 ‘그 사람’과의
사진과 이야기로 도배했다 불과 몇 주 만에‘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론 바뀌곤 또 다른 ‘그 사람’으로
똑같은 패턴으로 홈피를 꾸미기 시작한다.
현실과는 관계도 없는 달콤한 김제동식 말장난 철학으로
도배하여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여기저기서 쓸데없는 몇 줄짜리 글귀들을
마구 스크랩 해와선 거기에 자신을 맞추어 나간다.
남들이 써놓은 짧은 몇 줄짜리 글 따위에
자신의 신념마저 흔들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결국 또 하나의 ‘나’ 가 만들어진다.
어딜가서 무얼 했고, 어딜가서 무얼 먹었으며,
어제의 기분은 어떠했고, 오늘의 기분은 어떠하며..
설렘, 우울, 짜증 같은 기분표시 따위를 하루하루 변경하면서
자기의 기분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마치 보험설계사가 자신의 고객을 관리하듯이 일촌리스트를
펼쳐놓고 첫번부터 끝번까지 방명록 순회를 하며 다 비슷비슷한
글들을 남기곤 자신의 홈피에도 와달라는 은근한 암시를 한다.
애초에 무언가를 바라고 상대방의 홈피에 흔적을 남긴다.

Give and Take.
‘내가 너 사진에 예쁘다고 남겼으니 너도 예쁘다고 남겨야지’
하다못해 자신의 싸이 투데이라도 올라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촌평의 길이와 방명록의 숫자가
곧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다고 믿고 있다.
그 아무 의미 없는 일촌평과 방명록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모두가 타인을 생각하는 척 그러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결국
자기자신을 포장하는데 서로가 이용되어 주고, 이용할 뿐이다.
싸이를 허영심 마케팅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난 열등감을 건드림으로 싸이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본다.
열등감을 감추려 자기 자신마저 속이면서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포장해가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싸이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받는 글]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열등감이 있다고 고개 푹 숙이고 걷기보다
위장을 하든 포장으로 덧씌우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감이 생긴다면 괜찮습니다.

포장하기, 비단 싸이에서만 그럴까요?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는 말도 가려하고 조용하게 웃음지으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위해 끝까지 노력합니다.
그것을 누군가는 '가식' 혹은 '내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가식'과 '내숭'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 나라 사람들이 쌩얼로 거리를 활보하고
거실 쇼파에서 TV를 볼때나 입는 무릎나온 추리닝을 입은 채로
회사에 나와 비즈니스 대소사를 관장하며
그저 내 본모습을 보인다면서 평소 친구들과 쓰는 단어들로
결혼 승낙을 위한 상견례장을 휘어잡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애초부터 싸이는 자신만 꼭꼭 숨겨서 보는 일기장이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수많은 일촌이 다녀가고 더많은 사람들이 랜덤으로 지나가는
전적으로 타인에게 공개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꾸미고 살붙이고 다듬고 포장하며
남들이 보아주었으면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실에서도 제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하물며
싸이에서 진짜 모습을 바란다는 것은 과한 바램입니다.

비록 싸이를 하러 컴퓨터 앞에 앉은 차림이
속옷 바람에 목 늘어난 티셔츠라고 해도
싸이에 올리는 사진은 양껏 차려입은 사진이고,
비록 왼손가락 끝으로 콧구멍을 후벼파고 있더라도
오른손으로 올려지는 글이 구구절절 가슴을 후려파는 것은
'가식'이 아니라 어쩌면 싸이 세계의 '예의'입니다.

무인도에서 배구공과 단 둘이 살고있다면
'가식'이든 '예의'든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거리낌없이 딸랑거리며 활보하고 다녀도
누가 뭐라는 사람없고 본인이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살아갑니다.
우리를 포장하는 모든 것들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취사선택된 도구입니다.
싸이도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포장이 연장된 것
즉, 싸이버 세계에서 하는 포장입니다.

예전에는 짙은 색조 화장이 유행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한 듯 안한 듯한 화장이 대세입니다.
이른바 '투명 메이크업'이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싸이는 지금 말한 '투명 메이크업'입니다.
본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알고보면 그것도 포장된 것입니다.

싸이가 포장의 공간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싸이 일기장에 본심을 적어놓는다고 믿지않습니다.
본심이야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도 쓰지 않습니다.
싸이는 그저 화장대 앞에 놓인 수많은 화장품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차피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싸이입니다.

다만 항상 자기를 뒤돌아보며 지나치지않게 조심해야겠지요.
결국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곳은
냉엄한 현실이니까요.

(20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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