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정지

2016. 8. 18. 23:07 - 쓰디쓰다

 

 

 

일단은 멈춰 있어라.

 

서울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 단지

이미 10억을 훌쩍 넘어버린지 오래

하지만 여기에 오래된 건 그것만이 아니다.

 

마중물을 꼴깍 삼키기만 하고,

도로 게워내지 못하는 수동펌프

아파트 옥상까지 훌쩍한 메타세콰이어

싸인펜으로 꾹꾹 눌러 쓴 흡연금지 벽보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삼성 4헤드 VTR

무엇보다 낡아버린 아파트 그 자체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블랙홀이 아닐까?

손잡이가 달아난 펌프처럼

10억이 넘는 돈을 삼키고도 모자라 

시간마저 삼켜버렸다.

 

슬렁슬렁 돌아다니면

언젠가 헤어졌던 어린시절의 친구들이

저쪽 모퉁이에서 까꿍하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2016년 2월, 서울 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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