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멈춰 있어라.
서울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 단지
이미 10억을 훌쩍 넘어버린지 오래
하지만 여기에 오래된 건 그것만이 아니다.
마중물을 꼴깍 삼키기만 하고,
도로 게워내지 못하는 수동펌프
아파트 옥상까지 훌쩍한 메타세콰이어
싸인펜으로 꾹꾹 눌러 쓴 흡연금지 벽보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삼성 4헤드 VTR
무엇보다 낡아버린 아파트 그 자체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블랙홀이 아닐까?
손잡이가 달아난 펌프처럼
10억이 넘는 돈을 삼키고도 모자라
시간마저 삼켜버렸다.
슬렁슬렁 돌아다니면
언젠가 헤어졌던 어린시절의 친구들이
저쪽 모퉁이에서 까꿍하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2016년 2월, 서울 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