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무엇인가?

2016. 11. 24. 23:24 - 쓰디쓰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무엇인가? 
 
 
“삼겹살 삼인분하고 사이다 두 개 주세요.” 대림역 근처 식당 ‘장수생고기’에서 친구를 만났다. 양꼬치집 향신료가 골목을 가득 채워가듯 중국인들이 점령해가는 대림역에 얼마 남지 않은 생삼겹을 파는 한국식당이다. 늘 그렇듯 삼겹살에 탄산음료를 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저 너머에는 벌써 얼큰히 취기가 오른 아저씨들이 한창 이야기 중이다. 그들이 젊고 한창 때였을 무렵의 이야기인 듯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고 힘이 있었다. 아마도 수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술에 취해 또 생각이 나서 다시한번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듣는 쪽도 한두번 듣던 솜씨가 아닌지라 어디쯤에서 맞장구를 칠지 벌써부터 타이밍을 재고 있다. 
 
취미는 무엇인가요? 입사지원서의 취미란에 나는 ‘사진’이라고 적었다. 장롱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밴 아버지의 카메라를 꺼내 든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시합에서 다리가 부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된 인터넷 동호회는 나를 황학동으로 가게 했고, 어느 순간 내 손에는 삼만오천원짜리 하프카메라가 들러져 있었다.  
 
그 후 사진은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했다. 뭘 좀 찍어야했기에 파리 쫓듯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아하는 지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서울 변방을 헤매고, 그저그런 사진에 그럴싸한 설명을 해야했기에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삼겹살을 구우며 열변을 토로했던 아저씨들처럼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사진을 찍어왔는지 궁금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내가 찍어왔던 사진에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 주기적으로 사진을 올려왔던 싸이월드에 오랜만에 접속했다.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로그인에 성공했다. 사진첩으로 가서는 하나하나 마우스로 눌러가며 사진을 보았다.  
 
주로 도시의 뒷골목처럼 낡고 허름하고 못난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밝고 휘황찬란하고 예쁜 사진은 별로 없다. 그 당시 허름하고 어설픈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나와 닮았으니까. 
 
서울이 고향이 아닌 나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 덕에 서울의 가난한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야했다. 고단한 몸을 뉘러 들어온 방에 형광등을 켜면 혼비백산하는 바퀴벌레를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반지하와 ‘잭과 콩나무’처럼 그 꼭대기엔 틀림없이 거인이 살 것 같았던 좁다랗고 굽이진 계단을 끝없이 올라야했던 옥탑방에서 나와 친구들은 씩씩하게도 희희낙락했다.  
 
그 곳엔 나와 같이 아직 어설픈 사람들의 아픔과 기쁨, 유머와 해학, 번뜩이는 재치가 있었다. 난 그러한 것들에 사진기를 들이 대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들을 찍었다. 
 
앞으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눌함과 비루함에 눈길이 간다.  
 
그 어설픈 이면의 긍정적인 힘, 그것이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먹고, 잠자고, 옷을 입고, 멍 때리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손잡고, 껴안고, 걷고, 뛰고, 깜짝 놀래고, 놀래키고. 그 모든 것에 우리 삶의 긍정적인 힘이 배어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찍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은 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회사 일에 치인다는 이유로 코앞의 일만 보는 나에게 이러한 사진을 찍는 것은 세상을 읽고,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가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세상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이 옳다는 것. 그 긍정을 찍고 싶다. 
 
다시 삼겹살집으로 돌아간다. 테이블 건너편 아저씨는 소주에 취한 듯 목소리를 높힌다.
아마도 이야기는 이전에 수없이 말하던 과정에서 군더더기는 빠지고, 강조할 것만 취해져 보다 번듯해졌다. 내 사진도 코가 빨개진 아저씨의 이야기처럼 필요없는 부분은 잘라내고(트리밍), 강조할 것에 초점을 맞추어(아웃포커스) 좀 더 그럴 듯한 사진으로 만들어야겠다.

 

 

글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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